[21세기 준비하기] 소크라테스 소환 `너 자신을 알라`
Journalist : 창조마을 | Date : 22/05/08 1:10 | view : 31220     
 

르네상스가 아리스토텔레스를 소환한 이유가
'다양성'을 향한 담론이며 상징이라면,
21세기의 소크라테스 소환은
다양성의 핵심이
한 개인(personality)에게 있음을 발견한 깨달음을
선포하기 위함이다.

각 개인에 대한 선포이기에
들을 귀 있는 자는 들을 것이며,
한 개인을 우습게 여기는 담론은
결국, 도태되고 말 것이다.
21세기는 집단의 수명이
개인의 그것보다 훨씬 미치지 못함을 알아야 한다.

"너 자신을 알라!"
"무엇을 모르는 지를 알라!"
소크라테스와 그의 말이 21세기 우리들에게 던지는 메시지는
< 가난이나 세속적 평가 등에 전혀 구애받지 않는 삶 >으로 단정지을 수 있다.
한 마디로 < 나 중심의 사회구조 >를 이룬 존재성이 그의 모습이다.

관련하여, 가수 장기하는 최근 < 부럽지가 않어 >라는 곡을 발표했다.
반복되는 가사는 단연 '부럽지가 않어'이다.
그리고 라임, '자랑을 하니까 부러워지고,.. 부러우니까 자랑을 하고'
한 개인(person)의 존재구조를 읊조리고 있는 것이다.

르네상스에서 소환한
아리스토텔레스가 말한 '사회적 동물'은
한 개인의 존재구조가 타자와의 관계구조임을 밝히는 담론의 시작의 시작이라면,
21세기에서 소환한 소크라테스의 존재구조는
담론의 기초를 넘어서서 성숙의 경지로 나아가야 하는
< 존재구조의 궁극적 방향성 >을 선언한다고 할 수 있다.

타자와의 관계구조가 한 사람의 인격체가 될 터인데,
우리는 왜 타자로부터의 개인임을 자처하는가?
그 이유는 '영적 게으름'에 있다.
이는 '잠자는 주체성'을 의미한다.
주체성의 각성을 넘어서서
우리는 주체성의 부활로 나아가야 한다.

20세기 실존주의 태동 이후
객체적 자아는 오히려 깨트려야 할 대상적 자아로 인식되었다.
어떤 결정이 필요하다면,
그것은 외부적 가치도,
집단적 문화도,
국가적 시스템도,
그 어떤 외부적 체계도
한 개인을 속박해서는 안된다.
오로지 바로 그 주체성으로 결정을 할 수 있어야 한다.
이것이 곧 21세기로 나아가는 길이다.

만약에 21세기를 준비하는 개인이나 그룹이 있다면,
한 개인(person)을 위한 주체적 환경을 구축하는 것으로 출발해야 한다.
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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